일본정부 역사왜곡 및 강제노역 입장에 대해 유네스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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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담긴 이슈

일본정부 역사왜곡 및 강제노역 입장에 대해 유네스코 경고

by 책상위 커피잔 2022. 4. 14.

최근 우크라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선 푸틴의 가장 큰 잘못은 죄 없는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는 점이며, 한 국가의 주권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한 국가의 영토를 폐허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2022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기을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푸틴이 ‘정신이상자’라고 불리며 미친 듯 날뛰어도 일본군이 저지른 잔인함 앞에는 명함도 못 내밀것 같습니다. 최근 일본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리지만 계속해서 기억을 살려두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오늘은 작정하고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전쟁범죄 중 ‘강제노역’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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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과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생활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인도의 ‘타지마할’에서,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지난 1972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협약’에 의거 인류 전체를 보호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지정함으로써 보호하기 시작하였는데, 1972년 6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UN인간환경회의에서 “공해의 확산, 자연환경과 역사적 문화유산의 파괴는 곧 인류 유산의 파괴를 의미하며,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이를 방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됐고, 그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 1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유산협약’이 채택되었습니다.

유네스코가 보존하고자 하는 세계유산은 크게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이어야 하며,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난 증거’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로 인해 일본이 의외로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추진 중인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지난 2022년 2월 1일 일본 정부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2023년 일본 최대 금광인 사도(佐渡)광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달라"는 추천서를 제출했습니다. 

처음 이런 움직임이 시작됐을 때 한국인들은 일본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독보적인 문화적인 전통'을 보유해야하는데, 이 사도광산은 한국인들에게는 '강제동원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1,2000여명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했는데, 일본이 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차마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인가?" 할 만큼 황당한 행위입니다. 어쨌든, 쉽게 등재되지는 않겠지만, 일본은 러시아라는 암초를 만나 더 어렵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등재 여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원국인데, 러시아가 최근 일본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일본 자민당의 한 간부는 "일본 외무성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상대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찬성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지만, 러시아로부터는 회신을 받지 못했다"라고 전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등재 첫 단계 심사에서 '등재 권고'결정이 내려지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대없이 합의로 등재가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약 반대하는 국가나 여론이 있다면 투표를 거쳐 위원국 21개국 중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21개국 위원국을 상대로 보낸 요청 서신에서 절반 가량의 국가가 답변했지만 절반은 회신하지 않아 한국의 입장에서는 힘내서 등재 반대 외교전을 펼 수 있게 됐습니다. 왜냐면 조선인 강제 동원이라는 가해의 역사를 감춘 채로 세계유산 간판을 달려는 뻔뻔함은 저지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강제노동, 강제징용, 강제노역 등등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독하리만치 잔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포스팅에서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뤄보려고 합니다. 

 

◆ 1945년 밀리환초 한국인 반란사건

 

일본군의 잔인함은 수많은 기록들이 증언하고 있지만, 최악의 잔인함은 남태평양으로 강제동원했던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짓입니다. 지난 2010년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밀리환초(Mili Atoll) 조선인 저항 사건과 일본군의 탄압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밀리환초'는 남태평양 마셜 제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환초지역을 말하는데, 조선인 생존자의 증언과 일본 측 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식인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졌습니다. 

1942년 초 조선인 800여명은 남태평양에 군사시설을 짓기 위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동원됐는데 100개 가까운 섬으로 이뤄진 이 지역은 태평양 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마셜제도 밀리 환초지역
출처- 위키백과

그러나 일본군이 이 지역에 머문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군은 마셜 제도를 봉쇄해 보급품 수송을 완전히 차단해버렸는데, 보급이 차단된 곳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식량문제입니다. 극심한 식량난에 빠진 일본군은 식량 채집이나 고기를 잡아 끼니를 연명했는데, 45년 2월부터 갑자기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고래고기'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떼어져 나간 시체가 발견됩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동료들이 자꾸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무인도에서 발견된 살점 없는 시체는 바로 일본군이 고래고기라고 나눠준 것의 실체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밀리환초 내 첼퐁섬에 거주 중이던 조선인 120여 명은 감시인으로 파견된 일본군 11명 중 7명을 숲 속으로 유인해 제거한 후 미군에 투항하기로 했는데, 이튿날 이 사실을 보고받은 근처 일본군들이 몰려와 조선인 100여 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때 간신히 야자나무 위로 피신한 15명이 살아남아 그대로 묻힐 뻔했던 이 사실을 증언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일본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이 사건은 미국 국립문서 기록관리청(NARA)에도 사진자료로 남아있습니다. 'Record Group 125'는 미 해군 법무감실 문서 모음인데 이 중 '태평양 지역 전쟁범죄'를 모아 둔 박스에 관련사진과 기록이 남았습니다. 이 자료는 1945년 3월 조선이 노동자들이 밀리환초의 '치루본(Chirubon)섬'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던 일본군을 제거하고 미군에 투항을 결정했다는 점, 이튿날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대부분 몰살됐다는 사실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제노역으로 지친 조선인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미군에 의해 구조된 밀리환초 생존 조선인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이렇듯 일본군은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이를 은폐하고 감추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켜려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광산 강제노역

 

사도광산은 일본 나가타현 앞바다에 자리한 사도가섬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섬은 에도시대부터 금광으로 유명했습니다. 이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불리해지기 시작한 1943년 이후, 금 뿐만아니라 구리 등 전쟁물자 확보를 위해 광산을 채굴했는데,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발표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사도광산에 최초로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것은 1939년 2월로 이후 3년 여간 6차례에 걸쳐 총 1,200여명이 사도광산으로 끌려갔습니다.  이시기 광산에서 일했던 조선인들은 일본이 광부들에게 담배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만든 '조선인 연초배급명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명부에는 조선인 463명의 이름,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제동원 현장에서 일본군은 노동자들에게 밥은 주지 않아도 담배는 절대로 빠지지 않고 주었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어린아이들도 지급 대상이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일본 측 공문서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사도광산 전경
출처- 사도광산 홈페이지

 

일본 '니가타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라는 공문서에는 "1949년 2월 25일에 1,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으로 23만 1,059엔 59전이 공탁됐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다이헤이 광업주식회사'이고 공탁기관은 '니키타 사법사무국'인데 이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두 가지입니다. 

  1. 최소한 1,140여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었다는 점
  2. 이들 노동자들에 대한 급여와 저축, 각종 보험금은 본인에게 지불하지 않았다는 점

그런데 일본군은 왜 일본인들이 아닌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사도 광산으로 보냈던 것일까요?

지난 2022년 3월 22일 '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는 '사도금산에서의 조선인 전시노동 실태'라는 학술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역사인식문제연구회의 '나가타니 료스케' 연구원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사도광산 노무과에서 근무했던 '스키모토 소우지'라는 인물은 "일본인 갱내 노무자 중 규폐증을 앓는 사람이 많았고, 젊은 일본인들은 전부 군대로 징용되는 바람에 조선인 모집을 실시하게 되었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규폐증이란?

사실 사도광산은 끔찍한 '규폐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광산에서 채굴작업에 투입되는 광부들의 가장 치명적인 후유증은 규석이 원인인 '규페증'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규폐증의 원인은 규산 외에도, 석면, 시멘트, 철, 보크사이트 등의 분진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일본은 1930년 '광산법'에 '규폐증'을 직업병으로 인정했다가 1960년에 명칭은 '진폐증'으로 바꿨습니다.

갱내에서 암석을 다이너마이트로 폭발하면 산산조각난 돌들은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떠돌게 됩니다. 먼지 크기는 3미크론으로 너무 미세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를 현미경으로 확인하면 마치 '창'처럼 끝이 뾰족해서 연기처럼 공중에 떠다니게 되므로 노동자들은 이를 흡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분진이 폐를 찌르고 축적되면서 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섬유화된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상태에서 호흡곤란을 겪데 되는 심각한 질병이 바로 '진폐증', 즉 '규폐증'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도광산 유일한 생존 피해자인 '임태호'씨 증언이 남아있는데, 1997년 5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기록 사업에 참여했던 임 씨는 21 살이던 1940년 11월 사도광산으로 건너갔는데, 홀로 사도섬을 탈출해 가족과 재회했습니다. 그는 광산의 가장 깊은 갱도에서 채굴작업에 동원됐는데, 매일 아침 "오늘은 살아 나갈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갱도에서 마신 탄광 먼지 때문에 평생 폐 속에 작은 구슬 같은 덩어리가 남아있었고 평생 고통받았다는 것이 그의 가족 증언입니다. 이렇게 끔찍한 사도광산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것이 일본의 계획인 것입니다.

 

 

◆ 군함도 강제노역

 

 한편, 일본은 유네스코로부터 받은 경고 때문에 난감한 상황입니다. 지난 2021년 제4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에게 경고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군함도'라는 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보셨을 텐데, 이 군함도 역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됐던 섬입니다. 

군함도
출처- 위키백과

지난 2015년 일본은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이에 대해서 강한 반대를 표했는데, 일본이 "한국인 강제동원 사실과 노역사실을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이 등재결정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현 일본총리)은 "유네스코 회의에서 발표한 '조선인들이 강제로 노역했다'는 말은 '강제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본어판 번역문서에 '강제성을 담은 forced to work'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데 일하게 됐다'정도의 의미를 가진 '하타라카사레타(動かされた)"로 번역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의 교도통신은 "강제노동이라는 문구가 국제적으로 사용될 경우 일본 기업에 대한 조선인 징용자들이 한국 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는데, 결국 지난 2021년 제44차 회의에서 "세계유산 등재 당시 권고한 후속조처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충실한 이행을 촉구한다"는 결정문을 채택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일본 정부가 왜곡하고 있다"는 경고장을 날린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변화된 움직임도 주도 면밀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며...

'지소미아 파기', '일본제품 보이콧', '백색국가 제외',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등 2019년을 뜨겁게 달궜던 모든 일들의 배경에는 모두'강제동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규제를 시작하면서 모든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졌습니다. 도대체 일본은 언제쯤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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